한때의 붐, 이제는 위기: 변화하는 방송 산업의 현주소

2024-1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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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롤로그 >  
한때 유튜브와 라이브커머스의 폭발적인 성장은 영상 콘텐츠의 대중화를 이끌며 영상 시장의 중흥기를 열었다. 전문가들은 이를 통해 방송 시장이 수 배 이상 확대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현재 우리나라 영상 산업은 이 기대와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영상 산업의 흐름은 급격히 변화했다. 중고 시장에 방송 장비가 넘쳐나고 유튜브 스튜디오의 존재 가치조차 점점 희미해져 가고 있다. 대부분 장비를 업그레이드해도 실질적인 효과를 보지 못했다. 관공서의 방송용도 또한 변화하면서 외주 제작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 결과 "외주가 답일까?"라는 의문이 산업 전반에 퍼지기 시작했다.
코로나 시기 동안 비대면 교육이 급격히 확산되면서 많은 교육자들이 인터넷을 통한 영상 교육에 익숙해졌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영상 시장은 침체기를 맞이하고 있다. 비록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영상을 촬영하고 있지만 관련 업체들의 폐업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영상 산업은 현재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장비를 제공하던 설비 업체들조차 경영난에 시달리고 있으며 애써 가꿔 온 인력 역시 현장을 떠나고 있다. 사업자들은 프리랜서로 전향하거나 사무실을 서울 외곽으로 이전하는 등 생존을 위한 조치를 취하고 있지만 상황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고 있다.

특히 서울의 디지털 단지에서 시작된 총판 및 설비 업체들이 점점 외곽으로 밀려나는 상황이 증가하고 있다. 방송 장비 업계는 생존을 위해 사업 다각화를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시장의 포화 상태와 과열된 경쟁으로 인해 실질적인 효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시장포화상태이고  소비자와 업체의 관계는 확연히 변했다.  장비업계는 타겟에 따른 마케팅방향을 결정하지 못한채 유튜버와 블로거를 활용해도 기대만큼 결과를 얻지 못하자 오프라인 마케팅 비용을 줄이고 다른 온라인 방향성을 찾아 투자를 거듭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미하다.  한마디로 답이 없는 시장이 되어버린 것이다. 
게다가 주요  방송사들이 콘텐츠 제작에 대한 투자를 줄이고 비용 절감을 우선시하면서 영상 산업 전반에 걸쳐 파급력이 확대되고 있다. 결과적으로 눈에 보이는 1인방송 시장 등 각 개인의 자립성이 높아졌지만 영상 산업 전체의 생태계는 온라인과 맞물린 변화속에 심각한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확장속 불황의 원인을 전반적으로 조명해 보기로 하자. 

( 원인조명 내용상 하나의 현상이 여러 분야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중복 언급이 있을수 밖에 없는 점을 감안해주길 바랍니다.)



1. 온라인 정보에 의존하는 소비 행태가 방송 장비 시장에 미친 영향
한때 고가의 전문 방송 장비에 의존하던 영상 제작 시장은 스마트폰의 대중화와 유튜브의 등장으로 인해 급격한 변화를 맞이했다. 과거에는 고가 장비 없이 방송 품질의 영상을 제작하기 어려웠지만 기술의 발전과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의 등장으로 상황이 달라졌다. 유튜브는 초기 새로운 구독에 따른 수익 모델로 주목받았으나 기업입장에서는 마케팅 플랫폼으로 자리잡았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급부상한 라이브 커머스 시장은 스마트폰으로 간단히 촬영할 수 있는 환경을 주류로 채택하며 방송 장비 시장의 위축을 가속화시켰다.
유튜브 초기 대부분의 판매자들은 온라인 방송 제작을 위해 고가의 장비를 사용해야 한다고 권장했다. 그러나 해외 유튜버들의 저가 장비 활용 사례가 널리 퍼지면서 '저렴한 장비로도 충분히 콘텐츠를 제작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이러한 흐름은 소비자들에게 고가 장비의 필요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게 만들었다. 이에 따라 방송 장비 업계의 고가 제품 판매는 점차 어려움을 겪게 되는 악순환이 거듭되고 있다.
특히 저예산 영상 제작 팁이 온라인에서 확산되면서 고가 장비에 대한 소비자들의 신뢰는 급격히 감소했다. 저렴한 장비로도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유튜버들의 경험담은 더욱 신뢰를 얻었다. 급기야 고급 제품의 기술적 우위를 명확하게 설명하지 못한 판매자들은 소비자들에게 설득력을 잃어갔다. 이는 방송용 고가 제품을 충분히 활용할 수 있는 기술이 대다수 판매자들에게 없었기 때문에 구조상 판매자들은 소비자들에게 고가 제품의 퀄리티를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었다.




고가 장비와 저가 장비의 차이는 단순히 성능에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그 차이를 극대화할 수 있는 기술적 뒷받침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많은 사용자들은 고가 장비를 도입하면 성능 차이가 확연히 드러날 것이라는 착각을 가지고 있었다. 실제로 고가 장비를 도입한 곳과 저가 장비를 사용한 곳 사이에서 큰 차이를 느끼지 못한 사용자들은 결국 고가 장비와 기술 지원의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온라인에서 저가 장비를 활용한 영상 제작 사례가 빠르게 퍼지면서 고가의 방송 장비 수요가 급감했다. 수백만 원대의 카메라, 마이크, 조명 등은 일반 소비자들에게 점차 관심에서 멀어졌고, 영상 제작 경험이 부족한 유튜버들은 고가 장비와 저가 장비 간의 성능 차이를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워졌다. 그 결과 대중은 유튜버들의 주장을 전문가의 의견처럼 받아들이고 저가 장비를 선호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튜브를 통해 전달되는 정보가 항상 객관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특정 제품에 대한 과도한 홍보가 이뤄지면서 소비자들은 다양한 브랜드를 공정하게 비교하기 어려워졌고 편향된 인식을 가질 위험이 커졌다. 예를 들어 음향 장비 분야에서 Digico, Allen & Heath, Midas와 같은 고급 브랜드가 존재함에도 불구하고 X32와 같은 특정 모델이 유튜버들에 의해 마치 표준 콘솔인 것처럼 자리 잡는 기현상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유튜브와 같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한 정보 소비가 증가함에 따라 소비자들은 점점 전문가의 의견보다는 인플루언서나 유튜버의 주관적인 평가에 의존하게 됐다. 이는 오디오 및 방송 장비 시장에서 다양한 브랜드 간의 공정한 경쟁을 저해할 수 있으며 장기적으로 소비자들의 선택의 폭을 좁힐 수 있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검증된 전문 엔지니어들보다는 유튜버들의 주장에 무조건적으로 의존하는 소비 행태가 확산되면서 시장의 투명성은 저해되고 전문 방송 장비 업체들은 점차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2.  사라져가는 기술주도 판매 
영상과 음향 장비 시장에서 전문 엔지니어의 중요성은 날로 약화되고 있다. 과거에는 방송 장비를 구매할 때 전문 엔지니어의 기술적 조언이 필수적이었으나 판매업체들의 제품 정보가 부족해지면서 소비자들은 판매상의 기술지원 필요성을 크게 느끼지 못하게 됐다. 대신 온라인 정보에 의존해 제품을 스스로 선택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는 가격 중심의 시장으로 더욱 변화시키게 됐다.
점점 더 많은 소비자들이 온라인 정보를 통해 자신이 필요로 하는 장비를 선택하고 가격을 기준으로 판매업체를 결정하게 됐다. 그 결과 엔지니어의 기술 지원을 중심으로 제품을 판매하던 업체들은 경쟁력을 잃어갔다. 이로 인해 엔지니어의 존재가 사라진 판매업체들이 급증했고, 소비자들은 더욱 온라인 정보에만 의존하게 됐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판매업체들은 점차 기술 지원보다는 가격 경쟁력에 집중하게 됐고 결국 시장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졌다.





이런 가운데 온라인 플랫폼에서 영상과 음향 장비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는 유튜버들의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이들은 대부분 제품 판매나 개인 홍보를 목적으로 활동하며 객관적인 비교 분석보다는 특정 제품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한 상황은 소비자들이 제품의 성능을 객관적으로 비교하기 어렵게 만들었으며, 특정 브랜드나 제품에 대한 편향된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기여했다. 전문가들은 객관적인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했지만 상업적 목적을 가진 유튜버들과의 경쟁에서 밀려났다.
현재 방송 환경에서는 여전히 고성능 하이엔드 장비가 필요하지만 일반 소비자 및 일부 방송 분야에서는 사용이 간편한 미러리스 카메라와 같은 저사양 장비가 선호되기 시작했다. 미러리스 카메라의 등장으로 방송에서도 화질보다는 사용 편의성이 중시되면서 고성능 장비의 수요는 더욱 줄어들었다. 미러리스 카메라가 대세가 되면서 방송용 고가 장비에 대한 필요성이 현저히 감소했다. 그 결과 전문적인 영상 제작 기술에 대한 관심도 줄어들었다.
미러리스가 방송 장비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일부 엔지니어들만이 고성능 장비를 고집하게 됐고 인건비는 상승했다. 방송 제작 비용을 줄이기 위한 노력 속에서 미러리스 장비는 더욱 선호됐으며 쉬운 조작법 덕분에 렌털 업체들조차도 비용을 받고 촬영을 지원하게 됐다. 방송 제작 현장에서는 알바생을 통해 방송 촬영 인력을 충원하는 방식이 자리잡았고 중국산 PTZ 카메라와 같은 저렴한 장비들이 적극적으로 활용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고가 장비 대신 GoPro나 Osmo와 같은 액션캠이 방송 제작에 사용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으로 자리잡았다.
소비자가 온라인 정보에 집중할수록 기술 지원을 제공하던 판매업체들의 매출은 급격히 감소했다. 과거에는 기술 지원을 중심으로 제품을 제안하던 업체들이 대다수였지만 이제는 소비자들이 스스로 제품을 선택하고 가격 중심으로 업체를 결정하는 시대가 됐다. '판매는 가격, 마케팅은 온라인'이라는 공식이 빠르게 자리잡았고 기술 기반의 판매업체들은 경쟁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스마트폰, 미러리스, 액션캠, 드론, PTZ 카메라를 중심으로 촬영 시장이 확대되면서 방송 장비 시장은 더욱 가격 중심의 온라인 판매로 변해갔다. 하이엔드 시장과 일반 시장은 양분됐고 방송 장비의 고화질에 대한 관심도 점차 사라졌다. 그 결과 전문적이고 준전문적인 시장이 사실상 소멸해버린 것이다.



3. 가격이 지배하는 영상 시장, 매출을 독점하는 업체들


영상 장비 시장에서 가격만으로 승부를 거는 업체들이 등장하면서 이들은 수입사 출고가보다도 낮은 가격에 제품을 판매하는 사례를 만들어냈다. 위메프, 티몬, 인터파크와 같은 온라인 쿠폰 서비스를 역이용해 단가를 낮춘 이들 업체는 처음에는 가정용 카메라를 주력으로 판매했으나 이후에는 전문 방송 장비까지 그 영역을 넓히며 시장을 장악해 나갔다. 기술적 전문성은 부족했지만 가격 중심의 온라인 판매는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매출은 비약적으로 성장했다.
이로 인해 기술 기반의 판매업체들은 큰 타격을 입었다. 오랜 시간 공들여 제안한 프로젝트가 갑작스럽게 가격 경쟁으로 인해 무산되는 사례가 빈번해졌다. 또 제안 보호가 적용된 제품조차 소비자들에게 공개해 계획 자체가 취소되는 일도 종종 발생했다. 이들은 독창적으로 설계할 필요 없이 이미 설계된 제품의 가격을 내리는 방식으로 영업했다. 이는 시스템 통합(SI) 업체들에게는 심각한 위협이 된 셈이다.
수입업체들은 처음에는 온라인 가격을 공개하지 않고 오프라인 중심으로 영업하길 원했으나 대리점 간의 경쟁으로 인해 온라인 가격 통제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일부 수입업체의 경우 쿠팡에 직접 입점해 온라인 시장에 뛰어들었지만 결국 이들은 오프라인 유통 시장에서 외면받으며 스스로 시장에서 퇴출되는 결과를 낳았다. 특히 단가 중심의 업체들은 재고없음에도 경쟁적으로 가격을 낮추고 보는 경향이 강했고 이렇게 판매되는 제품은 기술지원이 소홀해질수 밖에 없었다.


고객 입장에서 단가를 낮춰 판매하는 업체들의 신뢰도는 확인하기 어렵다. 그들은 SI 제안 업체가 제공한 고급 장비보다 저렴한 장비를 추천받고, 결국 가격의 매력에 이끌려 고급 제품들을 외면하게 된다. 이에 따라 SI 제안 설비업체들의 기능은 점점 더 온라인 가격 중심의 판매업체와 유튜브 정보에 의해 대체되고 말았다.


카메라 판매업체들도 이미 십여 년 전부터 기술자들을 보유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에게 차별화된 경쟁력을 제공하기 어려웠다. 남아있던 몇몇 SI 제안 업체들도 온라인에서 지식을 얻은 소비자들에게 "이건 아니다"라고 설득할 수 없었고 기술력 있는 업체와 파트너를 맺은 소수의 구매자만이 상황이 나은 편이었다. 하지만 이런 구매자는 너무 적었다.
일부 소비자들은 저렴한 온라인 판매업체를 신뢰하지 않고 기술력 있는 업체를 찾아 직접 문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비교 견적이나 입찰과 같은 형식을 거칠 때 수주 확률이 5% 이하로 떨어지자 실력 있는 제안업체들은 정보와 기술을 기반으로 한 제안 자체를 꺼리기 시작했다. 그 결과 판매업체들은 더 이상 소비자들의 비교 견적 요구나 제안된 품목 리스트에 관심을 두지 않게 됐다.
결국 가격만으로 승부를 보는 업체들이 영상 장비 시장에서 매출을 독점하게 되면서 기술 기반의 판매업체와 SI 업체들은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 가격 경쟁이 지배하는 현재의 영상 시장은 과거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으로 변모하고 있다. 이는 향후 방송 장비 시장의 경쟁 구도에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4.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 가격 경쟁, 소비자도 타격을 입다
영상 장비 시장에서 소비자들은 설비업체를 선정할 때 온라인 견적 서비스를 활용하거나 제안업체에 직접 요청하는 방식으로 비교 견적을 받는 일이 흔해졌다. 소비자들은 설계 견적이 나오면 다시 온라인에서 가격을 비교해 최저가를 찾아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설비 책임은 여전히 설비업체에게 돌려졌다. 문제는 설비업체들이 매입가의 10% 정도 마진을 두어 세금과 AS 비용을 충당하고 있다. 온라인 최저가에 맞춰 판매할 경우 그 마진이 크게 줄어들거나 심지어 손해를 보게 된다는 점이다.
또 다른 경우 실무자가 제안받은 설계와 견적을 시장에 공개해 입찰을 받거나 무조건 낮은 가격의 업체에게 발주를 맡기는 방식이다. 이로 인해 제안업체는 설계에 투자한 인건비와 기회비용에서 손해를 보게 되고, 제품 구성과 운영 책임은 현업자에게 돌아간다. 제안업체들은 이러한 반복적인 소비자 행태에 신뢰를 잃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방문을 꺼려하는 업체들이 늘어나기 시작했고 견적 요청에 응답하지 않는 경우가 빈번해졌다. 심지어 일부 업체는 견적 비용을 따로 청구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환경에서 일부 소비자들은 처음부터 구매 의도가 없으면서 제안만 받는 행태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러한 경험이 쌓이면서 업체들은 방문 자체를 피하거나 견적에 무응답으로 대응하는 일이 많아진것이다. 일부 영업 중심의 업체들은 소비자가 너무 낮은 단가에 과도한 기술 지원을 요구하더라도 성심성의껏 대응했지만, 결국 그들도 프로젝트를 선별적으로 받아들이는 상황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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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 업체들, 프로젝트 선별의 이유
SI(System Integration) 업체들이 프로젝트를 선별하는 이유는 프로젝트 특성상 결정권자들이 실무자에게 비교 견적을 받게 하면서도 실무자들은 이 과정을 단순한 비교 견적으로 넘기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 결정권자는 상세한 기술적 요구를 모르기 때문에 실무자에게 단순한 가격 비교를 지시하는 일이 잦다. 이로 인해 업체들은 실제로 자신들에게 기회가 주어지는지, 단순히 비교 대상에 불과한지 명확히 알게 된다. 결국 실력있는 SI 설비 업체들은 대규모가 아니라면 확실성을 파악한 이후 제안을 진행하게 되었다. 
소비자가 직면한 정보의 한계
실무 기술을 바탕으로 설계된 핵심 정보는 점점 사라지고, 소비자들은 온라인에서 눈에 띄는 마케팅성 정보에 의존한다. 소비자들은 편향된 정보에 기반한 판단을 할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로 인해 또 다시 온라인에 의존하는 악순환이 형성된다. 브랜드는 자신들의 제품을 더 잘 팔기 위해 유튜버를 고용하거나 블로그를 통해 장점만을 부각시키는 방식으로 홍보하고 있다. 이는 소비자들에게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
이처럼 정제되지 않은 정보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지만 소비자들은 이를 객관적으로 비교하고 판단할 수 있는 전문 인력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회사들은 인력을 줄여나가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기술지원 중심의 회사들은 더욱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최저가 업체를 선정하는 소비자들의 고집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이는 결국 도움을 줄 업체들이 사라지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5.  영상·음향·미디어 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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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 장비 시장에서 소비자들의 요구는 점점 더 복잡해지고 있다. 이제는 단순히 카메라나 음향 장비를 구입하는 것을 넘어 영상 제작부터 편집, 송출, 유튜브 운영까지 모두 한번에 지원받기를 원한다. 그러나 이러한 모든 과정을 통합적으로 지원할 수 있는 특화된 방송 엔지니어링 기업은 한국에서 매우 드물다. 유튜버들은 특정 장비에만 집중돼 있으며, 실무적인 기술력과 깊이는 한계가 있다. 또한 온라인 중심의 업체들도 대다수 통합화에 있어서는 기술적 깊이가 부족해 전문적인 수준에서의 지원이 어려운 상황이다.


이전에는 도매업체들이 핵심 정보를 제공하며 설계와 제안을 진행하던 역할을 맡았다. 하지만 이러한 기능이 온라인으로 이동하면서 기술자들의 역할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제는 정보 단절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시장은 기술 발전과 방향성을 잃어버렸고, 이 틈을 타 일부 업체들은 자신들의 이익에 맞게 시장을 왜곡시키기까지 했다. 특정 제품을 홍보하기 위해 기술을 과장하거나 유튜버와 협력해 마케팅을 강화하는 업체들이 늘어났다. 일부는 직접 유튜버로 활동하거나 소셜 미디어를 통해 소비자를 유혹하기도 했다.
소비자의 인식 변화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사용자의 경험과 지식 수준이 점차 높아지자 이들이 신뢰했던 온라인 정보가 항상 정확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장비를 업그레이드해도 결과물이 기대만큼 향상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소비자들은 장비 자체보다 전문적인 기술 지원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다. 장비만으로 화질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의 세팅과 튜닝이 없다면 고가 장비도 저가 장비와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이다.
예를 들어 전문가가 사용하는 프로 캠코더는 기본 모드로 촬영할 경우 미러리스 카메라보다도 못한 화질을 낼 수 있다. 그러나 적절한 튜닝과 세팅을 통해 방송 수준의 화질을 구현할 수 있다. 온라인에서 저렴하게 구매한 장비는 이러한 전문가의 기술 지원 없이 최상의 결과물을 얻기 어렵다.




기술 지원 업체의 부재
가격 중심의 구매와 온라인 정보를 기반으로 한 기획이 보편화되면서 모든 것을 한번에 해결해 줄 수 있는 통합 기술 지원 업체는 거의 사라졌다. 고급 인력을 보유한 소수의 회사들과 거래하지 않는 한 소비자는 전문적인 기술 지원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기술 정보를 무료로 제공하는 판매 업체도 거의 없으며, 소비자는 결국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 현실에 직면한다.
과거와 달리 오늘날의 시장에서 무료로 기술 지원을 제공하는 것은 더 이상 지속 가능한 방식이 아니다. 물가와 인건비가 상승함에 따라 무상으로 고급 기술 지원과 책임을 제공하던 업체들은 대부분 사라졌다. 기술 지원을 제공할 경우 이는 필연적으로 높은 가격이나 기술료의 추가 비용을 포함하게 된다. 경우에 따라 자신들이 추천하는 장비를 구매해야 하는 전제조건이 따라붙는 것이 현실이다.
통합 기술자의 부재가 초래한 문제
이처럼 영상·음향·미디어를 아우르는 통합 전문가의 부재는 시장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다. 정보를 체계적으로 수집하고, 이를 바탕으로 적합한 기술적 솔루션을 제시할 수 있는 전문가들이 사라지면서 시장은 온라인에 편중된 편향된 정보에 의존하게 됐다. 결국 소비자들은 과도한 마케팅과 왜곡된 정보에 이끌려 선택을 하게 된다. 이는 장비 선택과 후속 지원에 있어 큰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통합 전문가의 부재는 방송장비 시장에서의 정보 단절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 이는 곧 장비의 품질이나 기술적 발전보다 가격에만 집중된 시장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장기적으로 이러한 현상은 시장의 발전을 저해할 수 있는 심각한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있다.

6 고급 기술정보 부재


영상 시장이 점차 붕괴되고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고화질에 대한 개념 상실'이다. 영상의 화질에 대한 질적, 논리적 평가 기준이 사라지고 있으며 고급 장비와 전문가들의 역할도 점점 축소되고 있다. 좋은 영상이란 무엇인지, 해외의 고품질 영상과 우리나라의 영상이 무엇이 다른지 설명해 줄 콘텐츠도, 이를 가르쳐 줄 전문가도 부재한 상황이다.
지상파 방송 엔지니어나 대형 제작사들이 이러한 정보를 공개하더라도 그 결과는 제작비 상승으로 이어질 것이 뻔하다. 결국 이들은 이러한 정보를 시청자나 일반 소비자에게 전달할 유인도 없고, 유튜브나 온라인에서 평가를 공유할 이유도 없다.


해외 영상 시장에서는 영상의 몰입감이 콘텐츠의 내용만큼이나 중요하다. 몰입감 있는 영상은 시청률 상승으로 직결된다는 것을 해외 방송사 관계자들은 잘 알고 있다. 예를 들어 아웃포커싱의 과도한 사용은 오히려 시청자의 집중도를 떨어뜨리거나 스토리 전개를 방해할 수 있다. 또한 인물이나 중요한 사물의 질감을 충분히 살리지 않고 디테일을 흐리게 표현하면 원근감이 사라져 영상의 몰입감이 크게 감소한다. 최근 일부 영상에서는 인물의 피부톤이 블랙을 잃거나 디테일이 뭉개져 인물의 얼굴이 2차원적으로 보이는 경우도 많다.


해외 영상이 더 좋은 이유는 장비의 차이가 아니다.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에서 사용하는 카메라와 조명 장비의 수준은 해외에 비해 결코 낮지 않다. 차이의 원인은 첫째, 충분한 제작 시간과 예산 부족이다. 좋은 영상을 제작하려면 시간이 필요하지만 국내 제작 환경에서는 이 부분이 턱없이 부족하다. 둘째, 시청자들이 화질에 대한 기준을 잘 모른다는 점도 문제다. 예를 들어 인물의 머리카락이 떡지거나 질감이 사라져도 시청자들은 이런 문제를 인식하지 못한다. 원근감을 단순한 포커스로만 표현하거나 피부 디테일이 뭉개져도 시청자들은 그 차이를 지적하지 않는다.


결국 화질보다는 콘텐츠 내용만을 중시하는 시청자들의 태도가 문제다. 시청자들은 고화질 영상에 대한 기준을 접할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초기 아이폰 광고의 영향 때문인지 많은 사람들은 휴대폰 촬영과 수천만 원짜리 방송용 카메라의 결과물 사이의 차이에 관심이 없어졌다. 시청자들은 노란빛이 돌고 뿌연 느낌의 영상을 보며 그것이 우리나라만의 '시네마형 영상'이라고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저렴한 중국산 장비나 미러리스 카메라, PTZ 카메라, 액션캠 등으로 영상을 제작해도 무방하다는 시장 구조를 만들어 냈다. 고급 장비나 전문가의 기술 지원 없이 영상 제작이 가능하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온라인에서 가격 경쟁만을 고려하는 소비자들이 늘어났다. 그 결과 기술 지원이 필요 없는 제품들이 시장을 장악했고, 가격 중심의 온라인 판매 경쟁으로 인해 전문 판매업체들이 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하게 됐다.
고급 장비와 전문가들의 기술이 사라지는 상황에서 영상 시장의 질적 하락은 불가피한 결과다. 고화질을 중시하는 기준이 부재한 채 소비자들은 점점 더 저렴하고 편리한 장비에 의존하고 있다. 이는 장기적으로 영상 산업 전반에 큰 악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7 저렴한 제품의 확산과 축소된 이익 구조




한때 영상 스튜디오를 구축하는 데에는 1억 원 이상의 예산이 필요했던 시절이 있었다. 그때는 영상 산업의 중흥기였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다양한 이유들로 인해 이제는 2천만~3천만 원 정도의 예산으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 하고, 개인 방송 스튜디오를 구축하는 데에는 500만 원 이하로도 충분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이다. 이러한 환경에서 업체들이 10%, 즉 50만 원의 이익을 남기고도 모든 책임을 지려고 하겠는가? 20%의 이익을 남긴다 해도 100만 원에 불과하다. 이러한 이익 구조로는 사용법 교육, 기술 지원, AS, 화질 튜닝, 네트워크 설치까지 제공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 인건비를 별도로 받더라도 업체 입장에서는 손해일 수밖에 없다.



결국 사용자가 직접 해야 할 작업의 비중은 점점 커질 수밖에 없다. 유튜버들이나 블로그를 통해 저가 제품이 대중화되면서 이러한 저렴한 장비를 사용한 구매 사례들이 시장의 대다수를 차지하게 됐다. 이에 따라 이러한 저가 장비를 전문으로 취급하는 개인 사업자들이 생겨났고, 이들의 성장은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최저가 유튜브 스튜디오를 구축하는 이들의 중흥기가 다가올수록 정통 방송 기술 업체들과 기존 판매업체들은 유지하기가 어려워지고 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저가 장비만을 취급하는 개인 사업자들이 성장하면서 프로 장비까지 취급하는 방향으로 확장해 나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이들은 초기에는 저가 장비로 시장을 장악하지만 점차 고급 장비와 전문 영역으로 영역을 넓혀갈 가능성이 크다. 이런 흐름은 정통 방송 기술 업체들에 더 큰 압박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과거 영상 시장을 이끌었던 고급 장비와 전문 기술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저렴한 장비를 선호하는 시장의 흐름은 단순한 트렌드가 아니라, 산업 전반의 구조적 변화를 의미한다. 과거의 고비용, 고품질 중심의 시장은 이제 저비용, 저품질 중심의 시장으로 재편되었고, 이로 인해 정통 방송업체들은 점점 더 어려운 상황에 직면하고 있다.
결국, 이익이 축소된 구조에서 생존하려면 기술 지원과 서비스를 차별화해야 하지만, 이러한 부분이 충분히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는 그마저도 어려울 수 있다. 영상 시장은 이제 저렴한 장비를 사용하는 개인들이 주도하게 되었고, 이는 전문 방송 장비 시장의 축소와 기술 기반 판매업체들의 위기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크다.


8 방송 지향점의 변화, 하이엔드 방송 시장의 새로운 방향




한국의 방송 시장, 특히 지상파 방송국은 한때 방송 기술과 서비스의 방향성을 선도해왔다. 4대 방송국(KBS, MBC, SBS, EBS)을 비롯한 주요 방송사들은 과거에 개인 다큐멘터리 제작을 지원하고 영화진흥위원회는 독립 영화 제작을 꾸준히 후원했다. 이들은 새로운 영상 기술이 나올 때마다 이를 선도적으로 도입하며 고품질의 영상과 몰입감을 시청자에게 전달하는 데 집중했다.
과거 방송국들은 화질에 대한 관심이 높았다. 인물과 사물의 질감이 충분히 표현되면 시청자들에게 높은 몰입감을 줘 시청률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영상,음향의 미적 감각이 곧 시청율과 연결된다는 의식이 팽배했고 방송 기술의 중요성이 강조되었다. 이는 방송사들이 지속적으로 고급 장비에 투자하는 이유이기도 했다.


하지만 시대가 변화하면서 방송 시장의 환경도 급격히 변했다. 채널 수의 급증으로 인해 개별 채널의 시청률은 감소했고, 광고 시장은 점차 온라인으로 이동했다. 그 결과 방송 제작비는 오히려 늘어났지만 제작 예산은 현저히 줄어들었다. 예능 프로그램이 일반 소비자들이 사용하는 카메라로 제작되면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이는 방송의 초점이 점점 화질보다는 콘텐츠 중심으로 변화하는 것을 시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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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아가 AI 아나운서의 도입은 방송사의 인력을 대체하는 현상을 가속화하고 있다. KBS를 비롯한 지상파 방송사들의 장비 투자는 전반적으로 줄어드는 추세다. XR(확장 현실) 기술이 대두되고는 있지만 이는 스튜디오 제작 비용을 절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으며, IP 기반 제작 시스템 역시 효율성 문제로 인해 적극적으로 도입되지 못하고 있다.


지상파 방송사의 인력 감소는 곧 모든 케이블 TV 제작사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이는 하이엔드 방송 장비 시장이 축소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다. 다만 한국의 TV 수출 시장은 여전히 활발하기 때문에 8K나 16K 같은 고해상도 기술이 도입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기술적 뒷받침이 이루어진다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 이러한 고해상도 기술이 빠르게 도입될 가능성도 크다.
그러나 일반 방송 시장에서는 이미 HD 해상도로 충분하다는 인식이 자리잡았다. 4K 카메라를 구매하더라도 대부분은 HD로 촬영하는 것이 일반화되었기 때문에 고해상도 기술의 도입이 일반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설비 시장의 변화 또한 주목할 만하다. 영상 장비는 이제 디스플레이 분야에서 새로운 방향성을 찾고 있다. 이미 몰입형 상영이 시도되고 있으며, 해외 사례처럼 경기장만한 몰입형 중계 영화관이 국내에 생길 가능성도 있다. 음향 분야에서는 버추얼 사운드와 업그레이드된 라이브 서라운드 개념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변화들은 정치적·경제적 이유로 인해 시도되는 것일 뿐 과거의 디지털 방송 전환이나 파일 촬영, 인터넷 방송, 4K, 3D, 홀로그램과 같은 흐름을 주도하는 주제들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다만 방송 시장에서도 레트로 트렌드처럼 몰입감과 질감에 대한 새로운 관심이 부상할 가능성은 있다. 이를 계기로 다시 한번 방송의 화질과 기술적 흐름이 변화할 수 있는 시점이 올 수도 있다.


10 일반시장의 미디어 관련 예산축소 
코로나19 팬데믹은 전 세계적으로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특히 영상과 음향 장비 시장에서 그 영향은 매우 컸다. 대다수의 기업, 관공서, 학교 및 단체들이 급격히 영상 장비와 음향 장비를 구매하게 됐고 비대면 인터넷 방송을 위한 시스템을 빠르게 구축했다. 하지만 코로나 이후 상황이 안정화되면서 이들 장비의 활용도가 급감했다.
코로나 시기에 구매한 장비들은 아직 불용재고로 전환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경우 신규 구매가 필요 없는 상황에 처해 있다. 많은 기관과 단체들은 이미 자신들이 보유한 장비를 사용해 보면서 고화질이 인터넷 방송이나 일상적인 용도에는 크게 필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고가의 장비 대신 '최소한의 예산으로도 충분히 인터넷 방송을 운영할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코로나는 방송 미디어 시장의 일반화를 10년 이상 앞당기는 역할을 한 셈이다.
뿐만 아니라 국가 예산 문제도  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필수적인 장비 업그레이드나 신규 투자는 미뤄지고 이미 보유한 장비를 유지하는 데에 더 많은 자원이 투입되고 있다. 이는 방송 장비 시장의 수요 감소로 이어져 시장 전반에 걸쳐 큰 타격을 주고 있다.



교육 시장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최근 '글로컬'이라는 주제로 국가와 학교들은 새로운 예산을 배정받고 있다. 하지만 이것이 영상 시장과 어떻게 접목될지는 아직 미지수다. 국가와 교육 기관들은 새로운 기술과 교육 방식을 어떻게 구현할지 연구와 논의를 진행하고 있지만 영상 장비의 구체적 활용 방안에 대한 명확한 계획이 부재한 상황이다.
결국 코로나로 인해 한층 빨라진 방송 기술의 대중화와 이를 둘러싼 예산 축소가 맞물리면서 방송 장비 시장은 큰 변화를 맞고 있다. 장기적으로 국가와 기업들이 기술 유지와 효율성에 집중하게 되면서 신규 장비 구매와 관련한 수요는 계속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이 같은 흐름 속에서, 방송 장비 시장은 어떻게 적응하고 발전해 나갈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11 용도별 장비분화, 제작별 세분화 적용과 변화


과거 방송 장비 시장은 ENG(Electronic News Gathering), EFP(Electronic Field Production), 캠코더라는 세 가지 주요 축으로 귀결됐다. 그러나 오늘날 방송 장비 시장은 용도별로 세분화되며 완전히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스마트폰 촬영의 대중화는 영상 제작의 패러다임을 바꾸며 이 분화 과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이제 카메라는 용도에 따라 더 세밀하게 분화됐고, 이는 방송 장비 시장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왔다.
세분화는 기술적으로 더욱 단순화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각 용도에 맞춘 장비들이 출시되면서 영상의 질감이나 미학적 측면이 점차 획일화되고 단조로워졌다. 이는 고품질 영상 제작에서 중요한 기술적 요소들이 점점 소홀히 여겨지는 현상으로 이어지고 있다. 좋은 방송물이란 무엇이며, 왜 기술적인 면이 중요한지에 대한 논의는 점차 사라지고 있다. 이는 사용자뿐만 아니라 제작자들조차도 점차 잊어버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경제적 이유도 이러한 변화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예전에는 방송국이 고가의 전문 장비를 중심으로 방송을 제작했지만 이제는 많은 제작자들이 유튜브나 OTT(Over-The-Top) 플랫폼 중심으로 콘텐츠를 제작하는 환경이 됐다. 이는 더 저렴하고 간편한 장비로도 충분히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만들 수 있다는 인식이 퍼지면서 가능해졌다.
이런 변화는 다소 과장된 표현을 빌리자면 마치 밭을 갈 때 호미를 사용하는 상황과도 같다. 과거에는 대규모 장비와 고도의 기술이 필요했던 작업들이 이제는 훨씬 단순화되고 저렴한 장비로도 충분히 대체 가능한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단순화된 제작 환경이 영상의 질적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방송 장비 시장뿐만 아니라 콘텐츠 소비자에게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장비 시장의 세분화와 간소화는 경제적 효율성을 추구하는 측면에서는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지만 영상의 품질과 기술적 깊이를 희생하면서 이뤄졌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방송 시장은 점차 기술보다는 경제성에 초점을 맞추게 됐고, 이는 장기적으로 고품질 콘텐츠 제작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게 할 위험이 있다.


12 음향업계의 영상시장 진출
한국에서 음향 설비 시장은 매우 크다. 그 중 90% 이상은 라이브 방송과 현장 인터넷 방송용으로 사용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계기로 영상 장비 시장은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특히 캠코더 수요가 몇 년간 크게 감소하면서 방송 장비 시장은 빠르게 PTZ(팬틸트 줌) 카메라로 전환됐다. 이런 변화는 음향 설비 업체들의 영상시장 진입장벽을 크게 낮추는 결과를 가져왔다.
기존에는 캠코더와 팬틸트 조합을 사용한 복잡한 설비가 필요했으나 이제는 PTZ 카메라 하나로 대부분의 현장을 해결할 수 있게 됐다. 실제로 대다수 현장에서 90% 이상이 PTZ 카메라만으로도 충분한 상황이 됐고, 여기에 중국산 저렴한 스위처를 추가하면 설비가 충분히 가능했다. 이러한 환경 덕분에 음향 설비 업체들은 영상 시장으로의 진입을 빠르게 확장하게 됐다.


PTZ 카메라 도입으로 인해 영상 기술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한 현장은 줄어들었다. 화질 조정이나 키 설정과 같은 어려운 개념이 필요한 프로젝트는 많지 않으며, 대다수 소비자는 4K 해상도만 만족하면 충분하다고 느끼고 있다. 인터넷 방송의 경우 신호만 설정해주면 소비자가 직접 방송에 적용하는 경우가 많아 영상 기술의 진입장벽이 더욱 낮아졌다.
이런 상황에서 음향업체들은 자신들만의 PTZ 카메라를 중국에서 수입해 브랜드화하기 시작했다. 이로 인해 소니, 파나소닉, 캐논과 같은 기존 캠코더 기반의 영상 장비 판매업체들은 시장 점유율을 크게 잃게 됐다. 전문 음향업체들은 영상 전문 기술 없이 발 빠르게 PTZ 카메라를 도입하며 음향과 영상 통합 설비를 제공하는 데 성공했다. 이들은 저가 제품을 대량으로 공급하면서 박리다매 방식으로 PTZ 시장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13 영상 장비 전문업체의 역할 축소
음향 설비 업체들은 과거에도 복잡한 영상 시공을 협업을 통해 해결해왔지만 PTZ 카메라의 도입으로 인해 더 이상 영상 장비 전문업체의 필요성이 크게 줄어들었다( 천만원대 이상의 소니,파나소닉 초고가 PTZ를 제외하고). 대부분 PTZ 카메라는 화질이 CCTV 수준과 비슷할 수밖에 없었음에도 코로나19로 인해 화질에 대한 요구가 줄어들면서 이 기술이 대중화됐다. 이로 인해 전문적인 기술 지원이 필요하지 않은 음향 프로젝트가 점점 많아졌고, 결과적으로 영상 설비 시장의 큰 부분이 음향 설비업체들에 의해 통합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해외 유튜브 사례와 비교되면서 프로 캠코더나 시네마 카메라 수준의 고차원적인 라이브 방송 시스템과 그에 걸맞는 기술적 뒷받침에 대한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라이브에서 카메라 LUT(룩업 테이블)를 활용한 고급 영상 튜닝이나 시네마급 화질이 필요한 방송에서는 여전히 기존 영상 장비가 요구되지만 이러한 변화가 방송 시장 전체의 분위기를 빠르게 바꾸지는 못하고 있다. 이를 반영하듯 소니는 프로용 캠코더/시네마 신제품에 LUT를 접목해 촬영할 수 있고 모니터링도 가능한 제품을 출시하고 있다. 
결국 음향 설비업체들이 영상 시장을 통합하는 흐름은 당분간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영상의 품질과 기술적 깊이를 다시 중요시하는 흐름이 등장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이로 인해 다시 시장이 분리될 여지도 있다. 당장은 PTZ 카메라와 같은 저가 장비가 주도하는 현상이 지속될 가능성이 크지만 향후 고품질 방송 시스템에 대한 수요가 다시 증가할 경우 시장은 다시 한 번 변화의 기로에 설 수 있다


결론: 
불투명한 방송 장비 시장, 변화와 생존의 기로에서
지금까지 살펴본 여러 원인들은 방송 영상 업체들이 폐업 위기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분명히 보여준다. 시장 상황은 그 어느 때보다 불투명하고 미래의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는 단서조차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저렴해진 장비와 축소된 마진 구조는 업체들이 직원을 유지하기조차 힘들게 만들었다. 수입원들은 이제 온라인을 통해 직접 제품을 판매하면서 중간 유통 구조를 무너뜨리고 있다.
과거에는 소니, 파나소닉과 같은 브랜드가 중심이 돼 기술 지원과 제안 판매를 이끌었다. 그러나 오늘날 이러한 시대는 끝나버렸다. 방송 장비 업체들이 살아남으려면 소니, 파나소닉, 음향 분야의 디지코(Digico), 마이다스(Midas), 알렌히스(Allen & Heath), JBL 등 다양한 브랜드의 전문적 지식과 정보로 무장해 자체적인 경쟁력을 갖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글로벌 브랜드들은 인터넷을 통해 과장된 광고에 집중하고 있으며, 유튜버나 인플루언서를 활용한 마케팅이 대세가 됐다. 해외처럼 직접 판매 채널이 활성화될 가능성도 크고, 온라인 사이트들은 이미 적극적인 행사와 할인 프로모션을 통해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하이엔드 방송 장비는 이러한 온라인 정보로부터 큰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신뢰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방송급 장비는 광고할 매체조차 부족한 상황이다. 이로 인해 세미나나 전시회에 집중하는 방법 외에는 뚜렷한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다.
사용자의 변화, 시청자의 무관심
시대가 변하면서 사용자와 시청자들의 요구도 달라졌다. 이제 시청자들은 더 이상 화질이나 기술적 우수성에 크게 신경 쓰지 않는다. 그 대신 콘텐츠의 내용과 간편한 접근성이 중요해졌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기술 기반 없이 가격 중심으로 온라인에서 경쟁하는 것은 경쟁력을 잃기 쉽고 유지 비용도 감당하기 어렵다. 세운상가처럼 단골 고객을 확보하고 오프라인 중심으로 운영하는 방식도 하나의 생존전략이 될 수 있다. 이제 와서 온라인 시장에만 투자하는 것은 큰 희망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코로나19 이후 개인 방송 시장은 급격히 성장했으나 수익성은 낮고 지속 가능성도 크지 않았다. 지금은 오히려 개인 방송 시장의 축소가 진행되고 있으며, 방송 장비 업체들은 새로운 방향성을 찾지 못하면 폐업이 더 나은 선택일 수 있는 상황에 직면해 있다.
시장 난립, 성장의 한계
방송 장비 시장은 그동안 과도하게 많은 업체들이 난립해왔다. 시장이 성장하면서 충분히 유지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그마저도 한계에 이르렀다. 방송 시장의 화두는 사라졌고 앞으로 몇 년간 개선의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 일부 업체들은 새로운 업종으로의 전환을 시도하지만 대부분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새로운 제품을 해외에서 론칭하더라도 광고비, 온라인 홍보비, 영업비 등을 감당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예산을 보유한 구매층을 만나기란 쉽지 않다.



생존을 위한 새로운 전략: 방송 장비 시장의 돌파구는 무엇인가
현 방송 장비 시장은 극도로 불확실한 상황에 놓여 있다. 그러나 이런 혼란 속에서도 시장 선도를 위한 노력은 결코 멈춰서는 안 된다. 특히 마케팅 방식의 변화는 이제 생존을 위한 필수 전략이다.
기존 마케팅 방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페이스북 같은 SNS 플랫폼에서 단순히 제품을 광고하는 것은 이제 의미가 없다. SNS 광고는 개인 시설 설비 시장에는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브랜드 제품이나 신제품 소개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다. 소규모 20명 내외의 세미나 또한 과거처럼 효과를 기대하기 어려우며, 전시회 출품도 예전만큼 강력한 마케팅 도구가 아니다.
더 큰 문제는 네이버나 구글 광고가 고비용임에도 불구하고 고급 라인업 소비자들에게는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온라인에서 제공되는 정보에 의존하지 않기 때문에 온라인 광고의 영향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오프라인 매체 또한 도달률이 현저히 낮아 전통적인 광고 방식만으로는 경쟁에서 살아남기 어렵다.


그렇다면 해결책은 무엇일까? 
첫째, 기술적 깊이와 신뢰를 제공하는 것이 절대적이다. 
온라인에서 단순 가격 경쟁을 벌이는 업체들과 차별화하기 위해서는 최고 수준의 기술 지원이 필수적이다. 이는 소비자에게 단순한 제품 이상을 제공하며 기술력을 기반으로 한 신뢰를 쌓는 것이다. 기술력이 뒷받침되지 않는다면 결코 시장에서 경쟁력을 확보할 수 없다.
둘째, 음향, 영상, 미디어를 통합한 기술 기반 제안에 대한 투자를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 
단순한 판매로는 더 이상 시장에서 발판을 마련하기 어렵다. 오히려 고객에게 통합된 솔루션을 제공함으로써 차별화된 가치를 전달해야 한다.
셋째, 제품과 소비자 계층에 맞춘 타겟 마케팅을 정교하게 실행해야 한다. 
개인용 제품이라면 온라인 메일링과 웹사이트 중심의 마케팅이 효과적일 것이다. 프로 장비는 여전히 전시회, 세미나, 메일링, 오프라인 데모를 통해 소비자와의 접점을 늘려야 한다. 잡지 기사, 인터뷰 또한 프로급 소비자들에게 효과적일 수 있으니 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가장 중요한 전략 중 하나는 앞서가는 소비자계층과 판매제안하는 딜러를 위한 마케팅이다. 딜러들은 기업의 최전선에서 고객과 접촉하는 중요한 채널이다. 이들에게 촬영, 편집, 마스터링, 송출 등 고급 기술의 필요성을 어필하는 콘텐츠 제작과 교육을 제공해야 한다. 딜러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그들이 기술적 깊이를 이해하고 소비자에게 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이를 통해 제품의 신뢰도를 높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메일링 캠페인이나 기사 배포를 통해 주요 고객들과 지속적인 관계를 형성해야 한다. 특히 오프라인 언론 매체에서 정보 전달력과 신뢰성을 겸비한 기사형 광고는 강력한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보다 광범위한 접근과 전문적 매체의 힘이 절실히 필요한 시점이다. 몇몇 사람을 모아 진행하는 소규모 세미나보다는 더 많은 대중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마케팅 및 정보 시스템 구축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서는 현재 잡지사나 관련 협회와 같은 기관과 협력해 공동 마케팅 전략을 수립하고 실행해야 한다. 이러한 작업은 단순히 판매에 중점을 둔 기업이 단독으로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며, 협업과 통합적 기획이 필수적이다.  
이제 단순한 가격 경쟁으로는 더 이상 생존할 수 없다. 판매와 마케팅이 결합된 종합적인 전략이 필요하다. 이러한 전략을 통해 방송 장비 시장의 새로운 흐름이 등장할 때 준비된 기업들이 기회를 잡고 크게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어려운 시기에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마케팅 전략을 세워 시장을 뚫고 나가려는 노력은 결국 성공적인 돌파구로 이어질 것이다.